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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미라

미라로 밝혀낸 고대인의 사고 방식과 사고사 흔적

영혼을 보존하다 - 미라를 향한 집착의 심리 구조와 존재론적 상상력


고대 문명의 미라 제작은 단순한 사체 보존을 넘어, 존재의 본질과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의례적 행위였다. 특히 이집트 문명에서 미라는 단순히 죽은 자의 육체를 보관하는 수단이 아니라, 영혼의 항로를 안정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존재가 카(Ka)와 바(Ba), 아크(Akh)라는 세 가지 영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육체가 훼손되면 카와 바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죽은 자는 혼란 속에 갇힌다고 믿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맹신이 아니라, 인간 정체성의 지속에 대한 당대의 사유 방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심리는 현대의 인간이 디지털 아바타나 온라인 계정을 통해 ‘자기 이미지’를 보존하려는 행위와 유사한 점이 있다. 고대인은 육체의 온전한 보존을 통해 자신이 ‘이후의 세계’에서도 계속 존재하기를 바랐고, 오늘날 우리는 ‘기억’이나 ‘기록’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연장하려 한다. 두 시대 모두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에 근거한 존재론적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고대인의 미라 제작은 단순히 종교적 실천이 아니라 일종의 ‘사후의 기술’이며, 이 기술에 투영된 심리는 현재 인간이 인공지능, 유전자 보존, 뇌 복제와 같은 테크놀로지를 통해 영속적 존재를 추구하는 방식과 철학적으로 통한다. 미라는 단지 고대의 산물이 아닌, ‘존재의 시간성’을 가시화하려는 인간 보편의 욕망이 형상화된 유산이다.

 

피로 새긴 비극 - 미라가 들려주는 사고사와 제의적 폭력의 기록


수천 년이 지난 지금, 미라는 단순한 박물관 전시물이 아닌 당시 사회의 은밀한 진실을 말해주는 고고학적 증거물로 다시 읽히고 있다. 최근 CT 스캔과 3D 영상 재구성 기술을 활용한 미라 분석은 고대 사회의 정치, 권력, 종교 의례의 그늘 속에 존재했던 ‘죽음의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일부 미라는 명백한 사고사 혹은 의도적 살해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 제18왕조의 ‘세누트의 미라’는 머리뼈 후방에 가해진 강한 충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단순한 질병이 아닌 정치적 암살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 충격적인 예는 잉카 문명의 ‘라 리야야’ 미라들이다. 1999년 아르헨티나 유야야코 화산 정상에서 발견된 세 구의 아이 미라는, 섭씨 영하 20도 이하의 고산 지대에 의도적으로 방치된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10세 이하였고, 의복과 장신구, 음식물 등에서 제의적 준비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사망 직전에는 알코올과 코카 잎이 투여된 상태였다. 이는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쳐 신을 달래려 했던 종교적 사고체계, 그리고 이를 정당화한 권위적 사회 구조를 드러낸다. 이러한 사고사는 고대인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죽음은 단순히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와 질서, 두려움과 바람이 집약된 총체적 행위였다. 미라는 그 행위의 결과이며, 그것을 되짚는 것은 단순한 과거 되풀이가 아닌 인간 폭력성의 근원을 마주하는 일이다.

 

의식과 과학의 교차점 - 미라 제작 기술에 담긴 지식의 총합

미라 제작은 마치 종교와 과학이 경계를 허문 듯한, 고대 문명 특유의 융합적 사고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였다. 고대 이집트의 사제들은 단순한 종교인이 아니라 해부학자이자 화학자, 천문학자에 가까운 존재였다. 심장을 따로 보관하지 않는 것은 영혼의 중심이라 보았기 때문이며, 간, 폐, 위, 장을 따로 저장한 카노픽 항아리의 분류 방식은 해부학적 지식에 기반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사체를 나트론이라는 천연 염분으로 수 주간 건조하고, 특정 허브와 수지를 혼합한 물질로 세척하고 향기까지 입혔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경험칙이 아니라 화학적 반응과 체계적 관찰에 기반한 실용 과학이었다.

한편, 머리카락이나 손톱, 심지어 눈동자까지 보존하려 했던 흔적은 외적 형태를 지키려는 예술적 강박과도 연결된다. 이는 단순히 기능적 보존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삶에 가까운 죽음’을 재현하고자 한, 일종의 상징적 미학이었다. 더불어, 제작 과정 전체가 특정 날짜, 천문 주기, 신화적 상징과 연결된다는 점은, 고대인이 기술을 수행하면서도 그것을 우주의 질서 안에 위치시켰음을 시사한다. 이는 현대 과학과 철학이 나아가야 할 융합의 모범을 고대 문명이 이미 실현했음을 의미한다. 미라는 기술과 사유, 믿음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정제된 지적 결과물이었다.

 

죽음을 뛰어넘은 유산 - 미라에서 찾는 현대인의 거울


오늘날 우리는 미라를 과거의 잔재로 보지만, 실상 그것은 현재와 지속적으로 연결된 상징이다. 인간은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 공포를 무력화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모색한다. 최근 각광받는 크라이오닉스(냉동 보존)는 신체를 극저온 상태로 보존하여 미래에 의학이 발전하면 다시 소생시키겠다는 개념이다. 이는 고대인의 ‘육체 보존을 통한 영혼의 귀환’이라는 사유와 무척 닮아 있다. 또한 디지털 공간에서의 영생, 즉 SNS 프로필을 사망 후에도 유지하거나, 인공지능 기반으로 고인의 언어를 학습시켜 가상 대화를 지속하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자아’를 꿈꾼다. 고대인은 몸을 남기고, 현대인은 데이터를 남긴다. 이 둘의 차이는 물질의 형태일 뿐, 그 안에 담긴 심리는 거의 동일하다. 더불어, 미라에서 보이는 죽음의 방식들—예컨대 정치적 제거, 사회적 제물, 의례적 살해—은 지금도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전쟁, 혐오 범죄, 구조적 폭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은 우리 역시 고대인의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존재가 아님을 말해준다.

결국 미라는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거울이자, 우리가 죽음과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철학적 증언이다. 고대인은 죽음을 넘어서 존재를 보존하려 했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본다. 미라는 죽은 자의 몸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 정신의 표상이자 현재를 투영하는 가장 오래된 캡슐이다.